역사 / / 2023. 11. 19. 06:00

게티즈버그 연설을 말하다 -11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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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  2400 명의  게티즈버그 마을, 미합중국 병사                                                                15만 명이  그곳에서  3일 동안 치열한 전쟁을 벌이다.

 

1863년 7월 1일 ~ 3일까지 치러졌던 전쟁에서 수많은 전쟁 사상자로 인해

국립묘지가 만들어지고 이 봉헌식에서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이 만들어졌다.

전쟁 이후 국립묘지 봉헌식에서 이루어진 이 연설은 이후 가장 많이 인용된

연설 중 하나로 가장 위대한 연설로 손꼽힌다.

 

게티즈버그 연설은 에이브러햄 링컨이 남북 전쟁 중이었던 1863년 11월 19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에서 했던 연설이다.

이 연설은 게티즈버그 전쟁 이후 4개월 만에 이루어졌다.

1, 연설 발표 배경  및  발표 내용

1863년7월1일~7월3일까지 약 150,000명의 미 합중국 병사가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싸웠다. 이 전투는 남북 전쟁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이 전투는 당시 인구가 2400명 밖에 안되었던 게티즈버그 마을 자체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전장에선 포토맥군과 남부병사, 북 버지니아 군을 합해 7500명 이상의 병사와

5000마리가량의 말의 시체가 뒹굴고 있었으며 5월 여름의 들판에 내버려진

시체들의 썩은 냄새는 코를 찌를 정도였다.

벌판에 널 부러진 사람 및 말들의 시체는 게티즈버그 마을에서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처음에는 공동묘지 부지를 매입해 사망자 가족에게 매장료를 받아 매장하고자

하였으나 32세의 부유한 판사였던 데이비드 윌스는 이 계획에 반대하고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앤드루 그레그커틴에게 주 예산을 배정해서 국립묘지를

만들기를 청원했다.

 

윌스는 전장에서 죽은 병사들을 기리기 위한 17 에이커에 달하는 부지를 매입하도록

허가받았으며 이에 따라  $ 2,475.87의 예산을 배정받았다.

 

윌스는 원래 10월 23일에 묘지 헌정식을 가지고자 미국 국무부 장관, 미국 상원의원

,미국 하원의원, 매사추세츠주 주지사, 하버드 대학 총장, 미국 부통령 후보를 맡았던

에드워드 에버렛을 주 연사로 초빙했다.

당시 에버렛은 연설가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에버렛은 자신이 이 짧은 기간에 제대로 된 연설을 준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답하며 날짜를 연기할 것을 주문했으며 장례 위원회에서는

이를 받아들이고 날짜를 11월 19일 목요일로 연기했다.

 

윌스와 장례 준비 위원회에서는 이후 링컨 대통령을 초청했다.

윌스의 편지에서  “이 국가 행정부의 장으로서 이 행상의 의의를 명확히 하는

짧은 몇 마디 헌정사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한다.

링컨은 이 초청을 식이 시작하기 17일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받았으며

이는 에버렛에 비해 40일 늦었다.

 

링컨이 윌스의 편지를 받으리라고 예상했다는 증거가 몇 가지 있기는 하지만

행사를 시작하기 17일 전에 대통령을 초대하는 것은 19세기 기준을 적용해도

상당히 늦은 시간이었으며 상당히 실례로 비칠 수도 있었다.

이는 현대의 매우 큰 행사에서 유명인을 초청해 리본 자르기를 하는 것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래도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연설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명 연설이었다.

 

여기서 발표 내용을 둘러보자 

2,  발표 내용

팔십 하고도 일곱 해 전 ( Four score and seven yesrs ago ),

우리의 선조들은 자유 속에 잉태된 나라,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믿음에 바쳐진

새 나라를 이 대륙에 낳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나라, 혹은 그 같이 태어나고 그 같은 믿음을 가진 나라들이

오래도록 버틸 수가 있는가 시험받는 내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전쟁의 거대한 격전지가 되었던 싸움터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그 땅의 일부를, 그 나라를  살리기 위하여  이곳에서 생명을 바친

이들에게  마지막 안식처로서 바치고자 모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해줘야 마땅하고 옳은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이 땅을 헌정하거나,,, 봉헌하거나,,,

신성하게 할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 싸우다 죽은 , 혹은 살아남은 용사들이

이미 이 땅을 신성하게 하였으며 우리의 미약한 힘으로는 더 이상 보탤 수도

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는 것을 세상은 주목하지도 오래 기억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용사들이 이곳에서 한 일은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살아남은 이에게 남겨진 일은 오히려 이곳에서 싸운 이들이 오래도록

고결하게 추진해 온, 끝나지 않은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남은 일은 오히려 명예로이 죽은 이들의 뜻을 받들어

그분들이 마지막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한 그 대의에 더욱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고 신의 가호 아래 이 땅에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키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지구상에서 죽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 Govement of the people , by the people , for the people ,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

 

1863년 11월 19일 오후 2시 13분 –연설일자

 

링컨 암살 사건 : 미국 남북 전쟁이 끝난 지 5일 후인 1865년 4월 14일

금요일 10시경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포드 극장에서

남부 지지자 가톨릭교도인 존 윌크스 부스 일당에게 암살당함

 

이상으로 게티즈버그 연설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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