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 운하는 지중해와 홍해를 수에즈 지협을 통해 잇는 이집트의 운하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구분하는 운하이다.
2021년 최근 일어난 수에즈 운하가 마비된 사고에 대해 내용을 알아보고 수에즈 운하 역사 및 기타 내용에 대해 알아보자
2021년 3월 23일에 컨테이너선 에버 기븐 ( EVER Given ) 이 수에즈 운하에서 좌초되어
6일간 통행이 마비된 사건이다
약 400m 길이의 배가 시속 74km의 모래 폭풍을 맞고 넘어진 것이
좌초의 원인중 하나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당국은 이것이 주된 원인이 아니며 기술적인 문제나 사람의 실수가 가장 큰 원일 수 있다고 밝혔다.
좌초가 이 운하의 남단에서 발생한 까닭에 우회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아 최소 369척의 선박의 통행이 지연되었다.
3월29일에는 배를 우측으로 80%정도 회전시키는 데 성공한 데어 현지 시각으로 오후 3시 5분에는 완전히 배를 구조하는데 성공했다.
배는 예인선의 인도를 따라 조사를 위해 그레이트 비티호로 이송되었다.
운하 당국은 손실 정도를 조사한 후 통행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현지 시각으로 오후 7시에 통행이 재개 되었다. 에버 그린호가 부양한 뒤로도 운하 남북에 대기하고 있는 선박이 많아 정상화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2021년 4월 4일 수에즈 운하 관리 당국은 사건 발생 11일 만에 운하 정상화를 선언하였다.
전 세계 물류의 약 10%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까닭에 전문가들은 이 사건으로 인해 유류. 일용품 등의 운송에 심각한 차질이 생길 것으로 내다보았다.
매 시간 4억 달러의 손해가 예상되었으며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추가로 매일 90억 달러 상당의 상품 운송이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수에즈 운하를 주요 통로로 이용하고 있던 석유운송이 차질을 빚자 국제 유가는 6% 이상 상승하였다. 이 사건은 커피의 물류에도 큰 영향을 주었는데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인 베트남에서 유럽과 미국 동부로 보내는 커피의 대부분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이상 최근 이슈였던 수에즈 운하 사고로 인한 피해와 원인에 대해 간략히 묘사를 해보았습니다. 그러면 수에즈 운하에 대한 내용을 알아보자
1. 현재의 수에즈 운하 역사
1858년 페르디낭 드 레셉스가 운하 건설을 위해 수에즈 운하 회사를 설립 , 1859년부터 ~ 1869년까지 오스만 제국의 지원하에 공사가 진행되었다. 1869년 11월 17일 정식 개통되었다 현 기준으로 약 159년의 역사를 가진 수에즈 운하이다.
2. 고대의 운하 역사
오늘날 존재하는 수에즈 운하가 최초는 아니다. 이미 고대 이집트 제26 왕조 네 카우 2세는 지중해, 홍해를 잇는 운하 건설을 최초로 시도하여 완성을 눈앞에 두었다. 그러나 신탁에서 운하가 완성되면 적들이 유리하게 이용하리라고 했기 때문에 완성되지 못하고 중지되었다. 당시 무려 14만 명의 사망자를 냈으며 19세기에 만들어진 수에즈 운하와는 달리 나일강 삼각주의 제일 동쪽 끝에 흐르는 한 지류와 홍해를 연결했다.
네 카우는 두 척의 배가 동시에 지날 수 있을 정도로 넓게 판 운하로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해 양쪽 바다의 함대를 통합 운영하려 했다.
역사상 수에즈 운하의 건설 작업은 여러 차례 시도됐으나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가 이집트를 정복한 후 드디어 완성된
이집트와 페르시아 간 항해가 용이해졌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후 이집트를 지배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로마 제국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2세기 초의 트라야누스 황제시대, 초기 이슬람 시대에도 운하가 재 개통됐지만 그때마다 침니 현상이 일어나 물길이 다시 막혔다.
3. 반환
이후 대영제국이 운하를 다시 개통시켰으나 1956년에 가물 압델 나세르의 이집트 정부에서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함으로써 이집트 정부로 반환되었다. 그에 따라 제2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였으나 미국과 소련의 상호 협약에 의해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가 관리하게 되었다.
4. 용량 및 운하 폭 및 길이
수에즈 운하는 배수량 15만 톤의 선박도 지나갈 수 있다. 선박의 홀수가 20m까지 허용되며 만적상태의 24만 톤 슈퍼탱커도 통과할 수 있다. 어떤 슈퍼탱커는 너무 커서 초과 적재량은 따로 내려 운하 소유의 보트에 실어서 따로 보냈다가 , 배가 운하를 지나면 다시 싣기도 하였다.
지중해와 홍해를 통해 북대서양과 인도양을 잇는 수로로 아프리카를 우회하지 않고 유럽과 아시아를 해상으로 연결한다. 운하는 북쪽의 포트사이드와 남쪽의 수에즈 인근을 잇는다.
건설 당시의 운하는 길이 164 KM , 깊이 8 M였지만 몇 번의 공사를 받아
현재는 길이 193.30 KM 깊이 24 M 폭 205M가 되었다.
5. 운영
수에즈 운하는 평탄한 지형 때문에 갑문이 없으며 운하 양끝 두 바다 사이의 해수면 차이도 미미하다. 평소에 운하에 세척의 호송선이 순찰한다. 두 척은 남행이고 한 척은 북행이다. 첫 번째 남행 호송선은 매일 아침 시간에 운하로 진입해서 그레이트 비터 호수로 가는데 여기서 길을 막지 않도록 통행 항로를 벗어나 정박하며 북행 호송선이 통과하길 기다린다
북행 호송선은 엘 칸타라 인근 우회로에 정박한 두 번째 남행 호송선을 지나간다.
운하를 통과하는 속도는 8노트 (15km)로 11~16시간 정도 걸린다.
느린 속도로 움직여 운하 양안이 배가 일으키는 파동으로 침식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1955년에 대략 유럽의 석유 2/3가 이 운하를 통과했다.
현재 세계 해상 무역량의 7.5%는 이 운하를 통해 이동한다.
2008년 21,415척이 통과하였고 통과료 수입이 총 53.81억이었다.
이는 이집트의 2008년 GDP 4,525억의 1.2%에 해당된다.
1 척당 평균 통과 비용은 대략 250,000 달러이다
수에즈 운하는 중립지대로서 이집트가 관리만 할 뿐 주권이 미치진 않고 수에즈 운하에 대한 임의적인 조치는 할 수 없다.
이상 수에즈 운하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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