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파는 초기 국가를 위한 개화 사상을 강조하는 세력으로서 탄탄한 세력을 만들어간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하지만 배의 항해에 잔잔한 바다가 있다면 잔잔한 바다 속에서 일렁이는
큰 파도가 있는 법, 새롭게 만나는 파도에 개화파는 대응을 잘 했을까요?
이 시점에서 개화파는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 가는데, 그 자체 내에서뿐만 아니라 외부 세력간의
이해와 갈등속에서, 정변이 일으키게 된다.
.
2부 시작해 봅니다.
1, 개화파의 세력 확산
1) 충의계를 만들어 신복모로 하여금 운영을 함
2) 광주부내에서 젊은이들 50여명을 끌어 모아 군사 훈련을 통한 사병 양성함
3) 1883년 김옥균 등은 신식 군사 훈련 목적으로 서재필과 서재창 등 14명의
사관생도 일본으로 유학을 보냄
4) 1884년 7월 귀국 서재필이 신식 군대 결성 건의 , 고종이 바로 조련국 설치 허락함 ,
5) 서재필이 사관장으로 취임하여 병력 양성
6) 윤웅렬은 함경남도 지역의 장정 50여명 모집 군사 훈련을 시킴
2, 명성황후와 개화파의 갈등
명성황후는 청나라를 끌어들여 흥선대원군을 납치, 텐진의 바오딩부에 유베를 보냄
1882년 민씨 세력의 개화 정책에 불만을 품은 위정 척사파와 대원군 세력이 봉량미 문제로 임오군란을 일으켜 왕비를 죽이려 하였으나 그녀는 재빨리 궁중을 탈출하여 충주목사 민응식의 집에 피신하였다.
그리고 비밀리에 고종과 접촉하며 청나라에 군사 지원을 요청하였다. 그녀의 요청으로 출동한 청국군은 대원군을 납치하여 청나라로 끌고 감으로써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조선태 청나라의 세력이 강해지는 것을 두고 조선의 자주 독립국론을 주장하던 개화파의 불만은 높아져갔다.
그 사건 이후 그녀는 친 청나라 정책을 실시하였는데 이 때문에 개화파의 불만이 높아져 갑신정변이 일어나고 일시적으로 개화당이 정권을 장악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때에도 왕비는 청국군의 도움으로 다시 정권을 되 찾는다.
3. 개화파 내부의 갈등이 증폭되다.
개화파는 대부분 박규수 ,유대치, 오경석의 문하생들이며 이동인과도 친분관계가 있었다. 그러나 개화파 안에서는 개혁의 궁극적 방향을 같이하면서도 실현방법에서 입장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김홍집,어윤중,박정양,김윤식 등의 온건 개화파는 일단 부국강병을 위해 문호를 개방하고 여러 가지 개혁정책을 실현다되 위정척사파( 우리 문물을 지키고 서양 문물을 배척하자 ) 상대하기 위해서 민씨 정권과 정치적 타협을 계속하고 청나라에 대한 사대외교를 종전대로 계속 유지하면서 점진적인 방법으로 힘을 키운 뒤에 청나라와의 관계를 끊자는 입장이었다.
반면에 김옥균,서재필,홍영식등 급진 개화파는 청나라에 대한 사대관계를 청산하는 것이 우선이며 친인척을 등용하여 임오군란과 각종 민란을 유발한 민씨 정권 역시 타협의 대상이 아닌 타도의 대상으로 규정했다. 온건 개화파와 급진 개화파는 수구파, 척신 처리 방법과 청나라에 대한 사대교린을 언제 끝내느냐를 놓고 차이점을 보였다.
온건 , 급진 개화파에게 일치하는 점을 위정 척사파 축출이었다
4. 정변 준비
내부적 갈등으로 밀려나는 것은 급진 개화파였다. 점차 요직에서 소외되어 갔다.
재정난 타개책으로 일본에서 3000억 엔의 차관을 들여오려던 계획도 잘 안되었다.
위와 같은 상황으로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1884년 개화파는 쿠데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7월에 정변 기도하나 구체적 날짜 못 잡음, 9월17일 박영효 집에서 정변 계획 발표
주위 환경
1),청은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조선 주둔군의 절반을 철수 시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2),일본의 조선에 대한 영향력의 욕심으로 공사 다케조에를 통해 구데타 지원 약속
3) 미국의 큰 기대를 했지만 별다른 호응 얻지 못함
4) 10월 초 청나라가 안남 문제로 프랑스와 싸워 패배함
5) 10월30일 다케조에 신이치로는 종전 개화파에 적극적인 호의 및 접근함
( 일본측 제안 : 공사관 병력 150명 지원 , 일화 3백만 엔을 빌려 주겠다고 제안함)
6) 김옥균,박영효 홍영식,서재필,서광범 등 급진개화파 세력들은 11월04일 박영효 집에서 회합
7) 다케조에 공사의 11월16일자 보고 문서에서 정변이 나면 김옥균 보호할 방침,청국군 격퇴 장담
8) 1884년12월04일 홍영식이 총판으로 있는 우정국 개국 축하 만찬회를 이용 정변을 일으킴
5. 거사 과정
12월3일 다시 한번 거사를 확인한 뒤 좌석 배치도를 확인한다. 그리고 앞뒤 입구 쪽에는 개화파의 군사를 매복 시켜 두었다.
1884년 12월4일 저녁7시 조선 최초의 우체국인 우정국 개국 축하 연회가 열렸다.
민영익을 비롯해 이조연 홍영식,김홍집,한규직,김옥균,박용효 ,서광범,윤치호 ,독일인 외교 고문 묄렌도르프,그리고 미국 공사 루시어스 푸트 ,영국 총영사 애시턴,청국 총판조선상무 진수당,일본 공사관 서기관 시마무라등 각국 외교관이 참석했다.
연회가 무르익은 밤 10시 경 갑자기 불이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민영익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잠시 후 그는 피를 흘리며 들어와 바닥에 쓰러졌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개화파 행동 대원의 칼에 맞은 것이다. 민영익은 서재창이 지휘하는 한 병사로부터 얼굴과 목에 칼에 찔렸다. 민영익이 땅에 쓰러지자 묄렌도르프가 그를 부축해서 달아났다.
연화가 아수라장이 되었고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김옥균을 비롯해 개화파 혁명 요인들은 계획한 대로 창덕궁으로 들어갔다. 때 맞춰 대궐 곳곳에서 화약이 터졌다.
김옥균 일행은 청국 군대가 쳐들어왔다고 거짓 보고를 하면서 고종에게 경우궁,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의 사당으로 피신하고 일본 공사에게 군대를 보내 보호를 요청했다.
연이은 폭발음 속에서 고종은 일단 이들의 말을 따랐다. 김옥균은 고종에게 일본 공사는 와서 나를 호위하라고 쓴 친서를 요구하였고 고종은 흰 헝겊에 이를 써서 전달했다. 이 친서에 의해 일본 영사관 군 병력 1개 중대와 일본 경찰 병력 1개 중대가 즉각 출동했다.
곧 일본공사 다케조에 신이치로가 이끄는 일본군 200명이 경우궁을 에워쌌다. 이 또한 미리 약속된 일이었다. 이어 한규직,이조연 ,민태호,민영목,조영하,유재현등 수구파 인물들이 시퍼런 칼날 아래 쓰러졌다.
6.척신 및 수구파 대신 암살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 등은 창덕궁으로 달려가 고종에게 사대당과 청국군이 변을 일으켰다고 거짓으로 보고하고 고종과 명성황후를 규모가 작아 수비가 수월한 경우궁으로 옮긴 후 개화파가 동원한 50여 명의 병력과 일본 영사관 군 및 영사관 경찰 200여 명으로 하여금 궁을 호위케 한 다음 대신들을 급히 불러 들였다. 한편 내시 유재현은 개화파 일행에게 국왕을 위협한다고 호통쳤다가 김옥균의 명령을 받은 장정이 휘두른 몽둥이로 타살 당했다.
12월4일 저녁 11시경 개화파는 국왕의 소명이라 하여 대신들에게 소집을 명했고 이에 따라 입시하려던 후영사 윤태준, 전영사 한규직, 좌영사 이조연을 타살하고 이어 판돈녕부사겸 해방총관 민영목, 의정부 좌찬성인 민태호 ,지중추부사 조영하등의 사대당 일파를 창덕궁 궐문 앞에서 차례로 타살 또는 총격을 가해 죽였다.
이 때 정난교 등 사관생도들은 서재필의 지휘하에 도성 주변 인가와 숲에 불을 지르고 대궐을 점령한 이후 나머지 수구파 및 척신 대신들을 처단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 중 민태호는 민겸호,민승호,민규호가 죽은 뒤 민씨 척신 세력의 거두가 되었고 순종비 순명효 황후의 친정아버지였고 민영목은 나이는 많았지만 명성황후의 11촌 조카였으며 조영하는 익종비 신정황후의 5촌조카였다.
정변에 성공한 개화파는 민씨 세력을 제거한 뒤 그 동안 민씨 정권에게 소외되어 왕실 인사로 조선 고종의사촌형인 이재선을 12월5일자정 궁으로 불러들여 부패 관료와 척신 세력을 제거하고 새 정부를 구성할 것이니 협력해줄 것을 요청하며 왕실과 연합정부 구성을 제안하였다.
개화파와 왕실은 새 정부의 각료 선정에 착수하였으며 미국 공사관을 비롯
각국 공사관에게도 정변 소식을 전달하고 지지를 요청하였다.
개화파는 계획에 따라 정변이 성공, 일정에 맞게 진행하는 듯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이후 3부는 계속 됩니다.
감사합니다
https://ko.wikipedia.org/static/images/footer/wikimedia-button-2x.png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3일 천하, 3일 혁명, 갑신정변을 논하다 ( 4 ) (12) | 2023.12.27 |
---|---|
3일 천하, 3일 혁명, 갑신정변을 논하다 ( 3 ) (4) | 2023.12.17 |
3일 천하, 3일 혁명, 갑신정변을 논하다 ( 1 ) (109) | 2023.12.03 |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에 대해 알아보자 (87) | 2023.11.28 |
폭포의 웅장함이 주얼 창이 에어 포트를 삼키다. (123) | 2023.11.24 |